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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든 기도에 응답하리라.

양정식 2015. 12. 22. 20:15

8. 모든 기도에 응답하리라. 순종하는 종들의 기도를 듣고 있다. 수고에는 열매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세상의 일도 그렇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이랴? 사랑하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라.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도록 열심히 기도하라.

현실의 삶에서 기도응답을 경험하지 못하는 우리를 곤혹케 하는 말씀이,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성경전체를 음미해보면 모든 기도에 들어가는 범주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이 깔려있다. 당신의 뜻대로 기도만 한다면 100%응답을 주시겠다는 게 그분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았든가 혹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가 아직 오지 않았든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한다면 모든 기도에 응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태도는, 순종하는 종들의 기도를 듣고 있다는 또 다른 말씀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기도란 봉사 등의 다른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못지않은 수고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세상에서도 모든 수고에는 대가가 있는데, 하나님이 주시지 않겠느냐고 되묻어보실 정도로 그분의 의지는 확고하다.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삶이 형통하고 평안하다는 것은 불 보듯 환한 일이다.

9. 기도의 모습이 중요하지 않고 기도의 태도가 중요하다. 스스로 경건한 체 하지 말라. 기도는 형식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원한다.

위의 성령의 말씀은 형식적인 기도로 일관하는 관행을 책망하며, 기도란 형식이 중요하지 않고 깊은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라.’(신4:29)는 성경말씀과 일맥상통하다. 이러한 모습은 시장어귀나 공공장소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질책하는 예수님과 동일하다. 기도란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 절박한 상태에서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적지 않은 크리스천은 기도의 모습을 다른 이에게 알리는 것을 즐기며 스스로에게 위안거리로 삼고 있기도 하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태도를 보고 계시다. 새벽기도나 금식기도, 작정기도의 희생을 높이더라도 간절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이다.

10. 다니엘 기도를 하라. 환경에 상관없이 기도하라. 기회가 나는 대로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순간순간 기도하라. 기도의 모본을 보여라. 무시로 기도하라. 24시간 기도한들 어떠냐?

언젠가 성령님께서 다니엘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셔서 성경에서 다니엘이 기도하는 모습을 찾아보았다. 그는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다. 그래서 대적들이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를 따라 기도했다. 베드로나 고넬료가 기도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하루에 3번씩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기도가 부족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책망이다. 하루에 한번 씩 기도하기도 어려운 판국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이야 따라하겠지만, 기도할 때마다 한 시간 가까이 기도한다면 다른 일들을 내려놓아야 가능할 것이다. 하루에 몇 번 기도하는 게 중요하게 아니라, 하나님은 하루 종일 기도에 힘쓰기를 원하신다.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말씀은 기회가 날 때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이라고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도 했다. 심지어는 24시간 기도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하시며, 일상의 삶에서 기도로 채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하셨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필수적인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힘이 없고 신앙에 능력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기도의 달인이 되지 않는다면 성경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다.

11. 기도했으면 때를 기다리라.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신속한 응답을 원한다. 그래서 금방 응답이 오지 않으면 실망하며 기도를 중단하기 일쑤이다. 대다수의 크리스천에게 기도는 고장 난 전화기에 대고 상대방의 응답을 호소하는 실망스런 경험으로 남아있다. 필자부부에게 하나님이 영음으로 말씀해주신 여러 가지 언급 중에, 위의 말씀 역시 자주 해주시는 내용이다. 왜냐면 우리 역시 신속한 기도응답을 재촉하기 때문일 게다. 우리는 기도하는 즉시 응답을 기대하고 요청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그 분은 빠른 속도의 응답을 하시기보다 최적의 시간에 응답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아무리 재촉하며 기도해도 언급이 없으시다. 그렇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구하는 것들은 빠짐없이 주실 것은 시사하며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하셨다.(벧후3:8) 우리에게는 오랜 시간으로 생각될 지라도 그분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다. 믿음이란 주실 것을 믿고 참고 기다리며, 줄기차게 응답을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믿음의 훈련이 되지 않았고 인내하는 성품을 배우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주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한다. 결국 응답을 받는 자는 인내와 오래 참음의 성품으로 끈기 있게 기도하는 자의 몫이다. 필자부부처럼 영음으로 성령의 말씀을 듣지 못했을 지라도, 성경에 이미 죄다 말씀해 놓으셨다. 성령께서 영음으로 주시는 말씀은 이미 성경에 언급해 놓으신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이미 성경을 통해 약속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중도에 기도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부족한 탓이지,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마다 응답하리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다. 인내가 성령의 열매에 들어있는 이유를 깨닫게 해준다.

앞서 언급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때를 미리 알려주시는 법이 없다. 예수님도 이는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행1:7) 아마 때를 알려주신다면 믿음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때를 알려주셨다고 하는 자칭 예언자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성경과 다른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말들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지나가보면 알겠지만, 그런 예언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님은 우리부부에게 절대로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다. 하물며 성경과 다른 말씀을 해주실 리가 없다.

12.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는 것이 믿음이다. 나는 온전한 믿음을 원한다. 믿음을 드러내야 한다. 믿음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짐작하신대로, 성령님은 믿음을 자주 강조하셨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고단한 인생의 짐들을 모두 맡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며 그분의 말소리를 귀로 듣는 일도 희귀한 일이다. 물론 간절한 기도로 그분의 임재를 요청하면 자신 안에 임재 하셔서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인생을 인도해주시고, 기도응답은 물론 지난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역시 믿음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믿음이 있어야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체험할 수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먼저 믿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보자. 국가의 통치 기구나 치안을 담당하는 조직이 형성되지 않은 고대의 씨족사회에서는 씨족을 떠나 타향으로 여행하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다. 그것도 소수의 가족과 전 재산을 짐수레에 달랑 싣고 고향을 떠나는 것은 목숨을 내어놓은 위태롭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도 말씀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떠나는 것은 평생 후회하게 될지 모르는 어리석은 결정임에 틀림없다. 그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친지사람들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뿌리치고, 그는 돌아오지 못할 긴 여행을 표표히 떠났다. 하나님이 그들의 가족의 목숨과 재산을 지켜주실 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 재산, 인맥, 자격증, 학력, 부모 등을 믿기보다 자신을 믿기 원한다. 이에 부응하여 그동안 지식과 경험으로 세우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믿음이라고 여기신다. 이 같은 결정은 대개 세상의 지혜나 그간의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결정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그 결정으로 치러야 할 인생의 결과가 두렵고 걱정스러워, 결국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고 평생 누려왔던 편안하고 안락한 삶 속에 안주하고 만다.

하나님이 돌보아주심을 굳게 믿고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력을 하기보다 세상의 지혜와 인간적인 노력으로 대신한다. 그러한 결정도 나름대로 열매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는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실패와 낭패의 성적표를 받아 들고 불행과 고통의 삶을 전전하게 될 것이다. 무소불위의 자연환경, 거대한 사회제도와 예측할 수 없는 경제 환경에 끼어 있는 개인의 능력은 먼지만도 못한 게 사실이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면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살겠지만, 이는 평생 살아왔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버려야 하는 일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수의 사람만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놀라운 결과를 얻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이어간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형식적이고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반복할 만한 적은 믿음은 있겠지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믿음은 자신의 판단과 하나님의 뜻이 동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철저히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산물이다.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훈련의 강을 통과해야 얻어지는 달콤한 열매이기도 하다. 이에 성령님은 하나님께 믿음을 보이지 않고 기도응답이나 문제해결을 경험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출처 :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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