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많은 양떼를 두지말고 건강한 양떼를 소유하라.
59.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뜻을 잘 살피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라. 영혼을 사랑하는 종이 되라.
성령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성경을 읽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성경도 하나님이 기자들에게 영음으로 들려주시고 나서 책으로 써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음으로 들려주는 말씀이 성경과 차이가 있다면 그 영음은 성령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이 된 반면에, 예언자의 예언은 그렇지 않다. 예언자의 예언이 검증이 되려면 먼저 성경의 잣대를 대로 비교해 보아 차이가 없어야 한다. 성경에 없는 내용이라면 검증이 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려보아야 한다. 정확성을 검증한 예언자가 우리 주변에 드문 이유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섞이고 악한 영이 교묘하게 생각에 넣어준 것을 눈치 채지 못한 탓이다. 성령이 주시는 말씀 중에 비슷한 의미의 말이 중복되고 반복되는 게 많다. 그래서 항상 성령이 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항상 깊고 친밀한 성령과의 교통에 많은 시간을 내야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도 쉼 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도 적지 않지만 거룩한 성품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는 많지 않다. 말과 행위로 전도한다고 열매가 풍성한 게 아니다.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전도의 열매가 맺힌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전도프로그램을 따라서 형식적으로 전도하는 이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렵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전도나 사역이나 열매가 없을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0. 구원사역을 계속하라. 목적달성으로 하지 말고 목적으로 하라.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라. 마음에 선한 동기를 갖고 하라. 세상에 속한 욕심을 버리라. 주와 동행하는 사역을 하라. 마음에 숨은 뜻을 잘 살피라.
성령께서는 본질적인 사역이 영혼을 살리는 구원사역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필자는 10여년간 준비해온 전문적인 사역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쫒아내고 병든 영혼을 치유하며 생명을 살리는 사역에 우선적으로 돌아섰다. 신년이 되면 교회마다 그해 목표를 새로 설정하고 예배당 전면에 표어를 적은 현수막을 내건다. 표어의 내용들은 교회마다 다르나, 대부분 몇 명 전도, 교인 몇 명 달성 등의 구체적인 숫자가 빠지지 않는다.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교회의 임무이기에 당연히 그런가 보다 했는데, 숫자로 제시하는 목표달성 방법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세상에서 들여온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의 학문인 경영학에서는, 조직이나 단체의 목표달성계획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여 원동력을 얻으려는 방식과 동일하다. 그래서 이같은 모습은 보험회사 등의 판매회사나 영업부서에서 흔하게 보는 이유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네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목표달성방식을 배워 와서 소위, 전교인이 참여하는 전도프로그램행사로 천국잔치를 열거나, 교회사무실 벽에는 각 구역별로 그래프를 그려놓고 독려하고 있다. 그래서 영혼을 사랑하는 진정함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의 시선이나 독려 때문에 부교역자들은 마지못해 부서의 교인숫자에 연연하며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님은 교인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도하는 목적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목적달성을 위해 사역하지 말고 목적 그 자체를 위해 사일하라고 하셔서, 필자는 마음이 뜨끔하였다. 왜냐하면 교회마다 전도행사에 열을 올리는 목적이 죽어가는 영혼을 사랑해서라기보다, 대형교회로 성장시키고 싶은 목회자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탐욕을 채우는 목적이라면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 뜻을 행하는 일이라도 허망할 뿐이다.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을 가로채는 악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회 안에도 세속적인 탐욕이 들어찼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되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항상 마음의 숨은 뜻과 동기를 감찰하며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속내를 날카롭게 살펴보고 지적하시는 성령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61. 험한 길을 택한 너희들에게 복이 있다. 그러나 약속이, 능력이 있다. 말씀의 뜻을 잘 살피라.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라. 사랑하는 종이 되고, 말씀의 종이 되고, 너희들의 사역에 내가 늘 함께 하겠다.
위의 성령의 말씀은 필자부부에게 하셨지만, 빛도 이름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세상의 모든 주의 종들에게 하신 말씀일 것이다. 필자부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안락하고 편안한 세상의 지혜와 인간적인 방식대로 사역을 하지 않고 힘든 노동으로 생계를 벌어가며 사역을 병행하였으며, 일반적인 교회의 전형적인 전도방식으로 목회를 하기보다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여 능력을 얻기에 힘썼고, 하나님이 보내주시고 양들만을 돌보고 환경이 열리는 대로 사역을 결심한 필자부부의 고단하고 어려운 삶을 보시면서 격려와 위로를 해주시려고 하신 말씀일 게다. 물론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놀라운 영적 능력을 얻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쁜 소식은,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듣는 것 일게다. 성경의 위인들도 이 약속의 말씀을 듣고 고난의 행군을 달게 받아들였으며 고된 순례자의 길을 참고 견디며 걸어갔다. 비록 세상의 삶은 고단하고 팍팍했는지 몰라도 영혼만은 기쁘고 평안하였다. 천국에서 받게 될 생명의 면류관과 엄청난 상급을 바라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필자부부도 성경의 위인들이 걸어간 그 길을 따라 묵묵히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62. 모든 일에 심사숙고하라. 여호와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라. 말씀과 기도에 착념하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묵상하라.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살아라. 양들의 움직임을 잘 살피라. 서로 사랑하라.
성령의 말씀은 세련된 지혜자의 조언처럼 투명하지만 밀도가 있다. 나이든 아버지의 말씀처럼 자상하면서 품위가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말씀을 듣고 있으면 성경을 읽어주는 성우의 말을 이어폰으로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언제나 성경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번지는 감동도 함께 전해진다. 그분의 말씀은 언제나 비슷하다.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곰씹고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매번 하시는 말씀이지만 깨달음이 다르다. 믿음을 쟁취하는 길은 언제나 악한 영들과의 싸움, 욕심과 쾌락을 쫓는 육체와의 힘겨운 싸움임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목회자들과의 생각과는 달리, 성령님은 적은 양일지라도 그 양들을 충분히 돌보고 살피며 사랑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많은 양들을 갖고 있다면 그들을 돌보고 살필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부족할 것이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의 그럴듯한 변명이나 성공지향적인 신학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들을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목회자의 탐욕에서 출발한 것임에 틀림없다.
63. 많은 양떼를 두지 말고 건강한 양떼를 소유하라. 모양을 갖추지 말고 능력을 중시하는 사역을 하라. 성령의 날개를 달아라.
교회의 양적 성장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는 대다수의 목회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성령께서는 많은 양떼를 두는 것을 지양하고, 대신 건강한 양떼를 두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많은 양떼를 두는 것은 목회자의 욕심일 뿐이다. 물론 부교역자를 두러 관리하게 하겠지만,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교인의 숫자에 욕심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의 의를 얻고자 하는 속내를 드러낼 뿐이다. 건강한 양떼라는 표현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건강한 양떼는 병이 들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이 영혼의 병은 탐욕과 방탕이 빌미가 된, 간음, 불륜, 미움, 질투, 싸움, 분열, 분노, 악성부채, 각종 중독, 술 취함, 불면증, 걱정, 염려, 불안, 두려움에 시달리는 각종 정신 질환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로 인해 이혼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며 하나님을 떠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사건은 사탄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세상의 황금만능주의의 인생관과 탐욕과 쾌락을 지향하는 세상풍조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 교회애에서는 이러한 영혼의 중병을 앓고 있는 양떼들이 적지 않지만 교회는 이러한 일에 관심이 없다. 오직 수많은 교인들이 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헌금을 성실하게 드리는 것뿐이다. 모양을 갖추지 말고 능력을 중시하는 사역을 하하는 말씀도 같은 취지이다. 모양을 고민하는 목회자들은 많은 빚을 얻어서라도 웅장하고 럭셔리한 자신의 예배당을 얻고 싶어 한다. 그래서 무리하게 교인들에게 건축헌금을 강요한다.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신 것도 마찬가지이다. 놀라운 성령의 능력만 있으면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양 떼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얻기 위한 기도와 말씀에 매진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계획이나 세상적인 지혜로 사역을 하고자 할 뿐이다. 성령의 날개를 달으라는 표현은 성경에 없는 말씀이고 평소에 잘 듣지 못한 표현이라 좀 의아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성령의 능력을 얻어 사역의 힘찬 동력을 얻으라는 뜻일 게다.
64.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지 말라.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항상 주위의 너를 시험하는 영을 조심하라.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사역하라. 말씀과 능력으로 사역하라.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라. 목자 없는 양같이 길 잃은 양들을 불쌍히 여기라.
필자는 몇 안 되는 교인들로, 가정교회를 섬기고 있어 재정에 대한 기반이 취약하다. 그래서 십여년 전에 사역을 결심하면서 지금까지 아내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고 있다. 생업이 없었다면 사역이 지금까지 지속되지 않았을 게 뻔하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내는 교인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생업을 통해 수입이 나오든, 아님 헌금을 통해 수입이 되든지, 모든 수입의 원천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헌금을 많이 드리는 교인들이라고 특별히 대우한 적은 없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적지 않은 교회가 헌금을 많이 드리는 부자들이 교회 요직에 선임되고 담임목사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가까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부자나 가난한 자나 교회에 오면 다 같은 소중한 양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을 보면, 가난한 자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신 것이 분명하다. 가난한 자들은 겸손하며 믿음이 돈독하지만, 상대적으로 부자들은 하나님을 돈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성품이 교만하고 냉정하기 일쑤이다. 성경에 이름처럼, 성령께서도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말고 가난한 자를 더욱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다. 또한 사역의 본질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영혼이 죽어가는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살려내고 회복시키는 일에 전념하라고 하셨다. 교회에 예배행사, 전도와 봉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모든 행사의 목적이 죽은 영혼을 살리는 데 있다. 그렇지만 형식적이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로만 그친다면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다.
성령께서는 말씀에 대해 자주 언급하셨는데, 말씀의 능력을 기르라는 조언을 자주 하셨다. 다른 종교의 신과는 달리,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신다. 그래서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시기도 하셨다.(요1:1) 말씀의 능력이란 말씀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고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설교에 겨우 듣는 성경지식으로 쌓아두는 현상에 그치고 있다.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려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한다. 감동을 경험하고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현상을 체험해야 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환경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다. 말씀은 악한 영과 싸우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성령의 검이 곧 말씀(엡6:17)이라고 하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