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만왕의 왕,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역이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역을 하라.
필자가 목회자이기 때문인지, 성령께서는 사역에 대한 말씀을 적지 않게 해주셨다. 필자는 2002년에 크리스천 재정관리 상담센터를 열고 사역을 시작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방송이나 책, 세미나, 상담 등의 사역을 해왔다. 11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영음으로 들려주신 사역의 방향은 필자가 그간 해왔던 주제와 사뭇 달랐다. 그전에는 전문적인 분야를 분비하는 사역했다고 한다면, 성령께서 사역이 열렸다고 하신 시점부터는 본질적인 사역에 집중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면서 사역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해주셨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역의 지침이 위의 말씀이다.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역자들이 있지만, 사역을 시작하고 나면 매일 동일하게 반복되는 일에 파묻혀 사역의 본질을 잊고 지낼 때가 적지 않다. 숲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체적인 숲을 바라보게 되지만, 정작 숲에 들어가 나무만 보고 있다면 숲을 잊는 경우와 같다. 자질구레한 일에 매달리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잃어버리고 사는 격이다. 위의 말씀처럼, 사역의 본질은 우리 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역하다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이 영광을 받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종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물론 당사자는 손사래를 치면서 강하게 부인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섬기려면 자신의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주 기본적인 말이지만, 사역자들은 이런 기본을 너무 쉽게 잊고 있다. 잊지 않으려면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역을 해야 한다. 성령이 내주하여 인도하시는 사역이라면 그분의 뜻대로 이끄실 것이 틀림없겠지만, 성령의 이끌림이 없다면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자신이 대접을 받는 사역에 빠지기 십상이다.
42. 사람의 이목을 끄는 사역을 하지 말라. 남에게 보이는 사역을 하지 말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위의 성령의 말씀은 모든 사역자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언이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보면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네 교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은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교회로 키우는 것이 적지 않은 목회자들의 꿈이다.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가 되었다면 목회성공을 했다는 찬사와 더불어 갖가지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헌금을 강요하고, 막대한 빚을 얻어 교회를 지으며, 부자교인들을 앞세워 가난한 교인들을 차별하기 일쑤이다. 남에게 보이려고 교회의 여력이 부족하지만 엄청난 교회 돈을 들여 방송설교를 하려고 줄을 서고, 이름을 내는 행사에 참여하고, 노회 등의 단체에서 명함을 채우는 감투를 차지하기위해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면서 정작 해야 할 말씀과 기도에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은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 것도 내놓을 게 없는, 자그마한 가정교회를 섬기는 필자부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작금의 우리네 교회 사역자의 행태가 그러하며 필자 역시 사역이 커지고 교인수가 많아지면 세속적으로 변질될까 우려해서 하신 말씀일 게다.
43. 계시된 말씀을 따라 사역하라. 능력과 계시로 사역하라.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 예수님을 사랑하는 목회철학, 거룩한 삶을 구현하는 목회철학, 모양이나 겉치레가 중요하지 않다.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라.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라.
사역자를 지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교회의 부교역자로 있다면 담임목사의 감독을 받게 되겠지만, 단독 목회자가 되었다면 누가 그를 지도하고 감독하겠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없지만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다. 목회자는 종의 신분이다. 종이란 주인의 뜻에 따라 일해야 한다. 그렇지만 날마다 회의석상에서 보고를 하고 감독을 받지 않는 이상, 게으르고 악한 종도 적지 않은 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성령의 권면은 단순하다. 성경에 계시된 내용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역자는 없다. 그렇지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되게 가르쳐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계시된 말씀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리라. 또한 능력으로 사역하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았다. 그 능력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인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기에 인간적인 지혜나 세상의 방법으로 사역을 하게 된다. 겉모양을 강조하고 종교의식을 중시하고 형식을 중요시하게 된다. 사역자 스스로도 남에게 보여 지는 모습을 꾸미기에 시간과 노력을 과도하게 투자한다. 성령님은 외모나 겉치레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하셨다. 특히 사역자들은 믿는 자들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진정한 리더란 솔선수범하여 스스로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 기도를 강조하기보다 스스로 기도자의 모습을 보이고 말씀을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최고의 리더십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44. 능력이 없는 사역은 죽은 사역이다. 성령의 탁월한 능력을 받기위해 기도하라. 사랑하는 양들을 위해 기도하라. 사람의 숫자에 연연해하지 말라.
목회자들의 주 업무는 예배시의 설교나 심방, 교육, 상담 등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업무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학교를 다녀 성경지식을 익히고 설교능력을 배양하면 된다. 그리고 선배들로부터 목회에 필요한 기능(?)을 전수받으면 그럭저럭 목회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안일한 목회현장은 안정적인 현대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초대교회에 교인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은 세련된 설교나 럭셔리한 예배당에 매료되어서가 아니다. 귀신이 쫓겨나가며 불치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이적과 기적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대는 그러한 영적 능력이 없어도 목회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역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은 인간적인 지혜나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귀신을 쫒아내고, 지난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질병을 낫게 하는 등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일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그런 능력이 없는 사역은 죽은 사역이라고 잘라 말하셨다. 필자도 그 말을 들으니 몸이 굳어지고 마음이 저려왔다. 성령의 탁월한 능력을 얻는 통로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를 통해서이다. 그렇지만 그런 기도능력을 얻기 위해 혼심을 다하기보다, 보다 쉬운 세상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많은 목회자들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를 원한다. 청빙을 받을 만한 실력이 못되면 스스로 교회를 키워서라도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설교 때마다 교인수가 많아지는 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이라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성령님은 교인의 숫자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제자로 변화되기 바라시지, 사람 수는 많지만 알맹이가 빠진 교회를 원하지 않으신다.
45.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사역을 하라. 가난한 이웃을 돌보아주라.
우리네 교회는 헌금을 걷는 데는 열정적이지만 정작 쓰는 데는 오리무중이다. 수입 지출을 보고하는 연말 당회 때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걸 트집 잡고 영수증을 확인하겠다고 나섰다가는 금세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성경에 기록한 십일조의 사용의 우선순위는 과부나 고아, 외국인등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네 교회의 실상은 3%도 채 안되는 게 우리네 교회의 현주소이다. 변명도 궁색 하기 짝이 없다.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빚을 내어 교회를 짓다보니 금융기관에 내야하는 이자가 천문학적인 숫자이고 시설에 대한 관리인건비나 비용도 엄청나다. 우선적으로 자신들을 편의를 위해 헌금을 쓰다 보니 정작 힘없고 가난한 자에게 돌아갈 돈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나누어 주고 베풀어주는 사역은 교회가 최우선 순위로 해야 하는 사역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는 뜻이 없고 자신들의 배만 위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슬프고 두려운 일이다.
46. 사역의 본질을 언제나 잃지 말라. 사역의 본질은 병든 영혼을 치유하여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사역(使役)은 말 그대로 ‘시키신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무슨 일을 시키시는가? 그분은 당신 대신 양떼들을 잘 돌보아서 천국의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신다. 말하자면 양들의 원소유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역자들은 자신에게 맡긴 양들을 잘 돌보아 병든 양이 있다면 치유하여 회복시키고, 죽어가는 양이 있다면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역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우리네 교회의 사역자들은 양들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병들 어 있는지 아님 건강한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규적인 예배행사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는지, 헌금은 착실하게 내고 있는 지에 관심이 더 많다. 양들이 처해진 삶이나 영혼의 상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양들의 삶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는 데 혼심을 기울여야 할 터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양들의 영혼이 갈급해하며 몰라라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사실 조차 알지 못한다. 삶의 지난한 문제에 짓눌려 있지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한 사역은 사역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는 것뿐이다. 자신의 현재 신분이나 수입에 영향을 주는 일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병든 영혼을 치유하며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역자가 아니라 종교적인 직업인일 뿐이다.
47. 사역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불평하지 말라. 사역은 너희 생각이 아니라 내 뜻대로 되는 것이다. 너희들의 사역이 내 사역이고, 내 사역이 너희들의 사역이다.
필자부부에게 성령께서 영음으로 들려주시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게 사역이 열리는 시기였다. 필자가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무려 10여년이 흘렀지만 사역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회 수입이 없기에 필자부부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며 시간을 쪼개어 사역을 하였으니, 어느 한 가지도 그럴듯한 열매를 맺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영음으로 대화가 가능해지자, 언제 사역을 열어줄 것인지 가장 시급하게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정확한 시기에 대한 답변은 없으셨다. 그래서 틈만 나면 반복해서 물어보곤 했다. 물론 사역이 더디 열리는 것에 대한 불평도 함께 쏟아 부었던 것도 사실이다. 위의 말씀이 그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사역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부부가 시기에 대한 요청권한이 없음을 분명히 하셨다. 그에 덧붙여, 우리 부부의 사역이 당신의 사역이라는 것도 강조하셨다. 그 후로는 사역이 열리는 시기에 대해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른 말씀을 하시면서 비로소 사역이 열렸음을 언급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