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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뜻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느냐?

양정식 2015. 12. 22. 19:37

136. 참고 기다리는 성품을 가지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 병으로 유명하다. 차가 조금만 밀려도 경적을 울려대고, 음식점에서 요리가 조금 늦게 나오면 독촉하기 일쑤이다. 가파른 경제개발시대에 살아온 국민으로서 조금만 늦어도 손해를 보는 일들을 숱하게 겪으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성품일 것이다. 만만디 성품으로 유명한 중국도 최근 경제가 개방되고 졸부가 속출하면서 조급한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서 지나온 우리네 과거를 보는 듯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조급한 성품을 싫어하신다. 성령의 열매에 오래 참음의 덕목이 들어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견고한 믿음은 오랜 시간이 걸려야 숙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의 응답은 대체적으로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기다리지 못한다면 천국의 자격도 잃을 게 분명하다. 이는 성경의 위인들의 경우를 보아서도 짐작할 수 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전언을 듣고 무려 15년이 넘어서야 이삭을 얻었다. 15년이 별것 아니라고? 임신 가능한 생리현상이 끊어진 노인에게 15년 이상을 기다리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일 것이다. 겨우 10살 남짓한 어린 소년인 요셉도 노예로 팔려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서 인생의 위태로운 고비를 겪다가 30세에 비로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기도응답에 무려 20여년이 걸린 셈이다. 모세도 40세에 애굽을 도망쳐서 광야에서 살다가 8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에게서 소원을 풀은 가난한 과부의 전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요청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도하고 응답이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기다리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기 일쑤이다. 이는 믿음이 없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성령은 참고 기다리는 성품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믿음의 원동력이라고 말씀하셨다.

137. 주와 동행하는 삶을 가르치라.

우리가 교회에서 배우는 것들은 교회에서 정한 각종 예배의 참석, 새벽기도회, 십일조, 봉사, 전도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대부분이다. 물론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행위가 뒤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믿음을 키우지 않고 신앙행위만을 반복한다면 허송세월을 할 게 분명하다. 성령께서 주와 동행하는 삶을 가르치라고 하신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본적인 통로이다. 하나님을 자주 만나는 기도의 습관이 없이 주와 동행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도의 모습은 항상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삶의 현장에서 기회가 나면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시행하는 기도회의 참석만으로 이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또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도 하나님을 만나는 또 다른 통로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도 얻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두번의 설교시간의 배움만으로는 이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매일 30분 이상 말씀을 읽으며 기회가 나면 성경책을 집어 들어야 한다. 이렇게 주와 동행하는 삶을 실천하려면 형식적인 신앙행위이전에 말씀과 기도의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138.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라. 오만, 자만, 교만하지 말라.

성령께서 심도 있게 말하는 주제중의 하나가 거룩한 성품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하기를 원하셨으며(벧전1:16), 거룩함을 따르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도 했다.(히12:14) 거룩함의 첫째는 사랑이다. 사랑의 장으로 유명한 고전 13장에는 사랑의 행위를 낱낱이 소개하고 있으며, 그중에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하는 말씀이 들어있다. 이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의 마음을 실천하는 덕목이다. 거꾸로 교만한 성품은 남보다 자신을 더 낫게 여기며, 남을 멸시하고 낮춰보며, 화나게 하고 싸움을 유발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오만, 자만, 교만하다는 말은 적용하는 경우가 다를 뿐 대부분 비슷한 뜻이다. 이를 동의반복으로 비슷한 단어들을 열거하신 이유는 강조하신 이유이다.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이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많은 돈을 들여 구제하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랑의 시작은 친절하게 대하며 사소한 일에도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은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이 몸에 배어 있어야 가능하다.

139. 사역에는 고난이 있으리니, 고난을 두려워 말고 성령과 함께 사역을 이루어 나가라.

성령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사역에는 고난이 필연적이라는 것 때문이다. 필자부부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재정적인 부족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했으며, 매일 고객을 찾아나서는 고된 노동인 방문판매를 통해 수입을 얻어야 했다. 많은 교인들로 교회를 채운 목회자가 되었으면 이런 고난을 일찍 벗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재정문제는 풀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렇듯이, 성령께서는 우리의 사역에 늘 고난이 있을 것을 예고해주셨기 때문이다. 물론 고난이 재정적인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재정적인 불편은 손톱 밑의 가시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성령께서 말하시는 고난은 대체적으로 사역으로 기인한 고난일 것이다. 순종하지 않은 양들 때문에 겪는 답답함과 더불어 양들에게 닥친 환란을 같이 경험하는 고통도 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는 그런 고난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위로하셨다. 예수께서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셨듯이, 우리도 역시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를 잊고 있다면 고난이 고통스럽겠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실을 늘 기억한다면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고난이 친구처럼 여겨지는 날도 올 것이다.

140. 너의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이의 말씀은 성경에도 자주 나오는 말로 액자에 넣어져 많은 사람들이 삶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삶에 실천하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다. 걱정과 염려, 두려움과 의심, 스트레스가 쌓이고 짜증이 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증거이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은 하지만, 다시 삶의 현장에 들어오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신앙과 삶이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사라진 탓이다. 교회의 예배행사나 기도회에 성실하게 참여한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아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진 삶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바울사도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고 예수님도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런 기도습관을 들여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야 한다. 하루에 30분 이상 성경을 읽는 습관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고 하나님께 맡기는 견고한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여야 비로소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맡겨진 삶이 일상생활에서 또렷이 보일 것이다.

141. 하나님의 뜻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느냐? 마음을 나누지 말라.

필자의 제자 중에 사업에 실패하여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가 있다. 기도와 눈물로 지낸 세월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재기와 회복의 날을 여쭤본 데 대한 성령의 응답이 위의 말씀이다. 그동안 기도는 많이 하였지만,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기도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이나 욕구를 채우는 기도가 대부분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역을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분의 영광을 위한 사역을 일으키시길 원한다. 그렇지만 우리 대부분은 각자의 삶이 부유해지고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욕망이 더 많다. 이 제자의 사업이 회복되고 재기하기위해서는, 지금까지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는 그 제자에게 하신 말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신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인 사항이지만 책에 기록하고 싶었다.

‘마음을 나누지 말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하셨다. 그 제자는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사업의 회복이 더뎌지자, 그만 먹고 살기에 바빠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몸과 마음이 피곤해져서 그만 기도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회심을 하여 기도습관을 되찾아 지금은 완전히 사업을 재기하였다. 그때 생활의 염려로 고민에 빠져 기도를 잃어버렸다면 쉽사리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삶이 어렵고 환경이 암울하더라도 세상의 걱정과 앞날의 두려움에 빠져 하나님의 찾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최악의 재앙이 따로 없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아 요청하는 영적 습관만 잃지 않는다면 희망을 되찾는 날이 곧 온다. 하나님은 빈말을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쉰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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