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 망하면 목사가 된다 ???
간혹 어떤 사람들은 목사가 되었는데 어떻게 소명을 확신했느냐고 물으면 하는 것마다 안 되고 하나님이 막으셔서 목사로 부르신 것 같다고 생각하고 목사공부를 하고 이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들이 대부분 목사의 길도 생각 이외로 힘들고 목회 길이 막혀서 3년 안에 그만 두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부흥회를 하는데 어떤 부흥사가 당신은 하나님이 사모로 부르셨다고 예언하여 자신은 그 말만 믿고 목사될 자리만 중매하여 사모가 되었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갈 때만에도(1970년) 일차, 2차에 다른 대학에 시험을 보러갔다가 떨어지니까 할 수 없이 신학대학에 들어왔다는 분들이 50%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차에 25명, 2차로 들어온 사람들이 25명이었는데 대부분 다른 학교에서 떨어진 분들이 갈 곳이 없어서 이곳이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서원을 했는데 그 길을 가지 않을 때, 하나님이 막으시는 경우는 있습니다. 서원을 하면 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업이 안 되기 때문에 목회자의 길에 대한 소명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너무 위험합니다. 사업이 안 되는 모든 사람들을 목회자로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또 어느 분은 자신의 일에 은퇴를 하고 할 일이 마땅치 않아 목회자의 길로 들어오는 분도 만났습니다. 미국에서는 여성이 이혼을 하고 생계가 막연하여 미국연합감리교회에 목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분들은 자신의 생계를 이 교단이 책임져 줄 것 같아서 목회의 길로 들어서는 분도 있는데 그러한 분들 가운데 한 명은 교단으로부터 3년 안에 부적합자로 판정되어 목회자의 자격을 박탈당한 분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가장 사업이 잘 될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혀 사람들을 불러서 어망을 올리었을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길로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요나도 일단 목회자가 된 다음에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요나와 같이 방황하다가” 목회자가 되었다는 표현을 잘 못 된 것입니다. 요나는 이미 선지자로 섬기던 분이였습니다.
사업이 망한다든지, 일이 안 되는 경우, 자신이 무엇인가 부족했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시기 위해 막으셨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업이 망하게 해서 목회자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업이 잘 될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길을 걷도록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을 잘 하는 사람이 목회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은 하는 것마다 망했는데 목회는 승리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목회는 사업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듭니다. 영적인 문제까지 보살펴야 하니까 더 힘들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목회는 아주 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업들보다 더 힘든 길이 목회자의 길입니다.
간혹 하나님은 사업을 망하게 하거나 건강을 잃어버려서 목회자의 소명을 깨닫게 하는 수도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을 때, 부르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체적으로 사업이 잘 될 때, 건강할 때, 어렸을 때, 목회자의 소명을 주십니다. 할 일이 마땅히 없어 목회자로 들어오도록 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내적확신이며, 공동체에서의 인정입니다. 이것을 내적소명, 외적소명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본인에게 이 소명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직접 부르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내적소명(inner calling)라고 부릅니다. 기도 중에 부르시든지, 어떤 사건을 통해 부르시든지 이 소명은 점점 강하게 자신에게 다기옵니다.
두 번째 소명은 공동체소명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외적소명(outer calling)이라고 부릅니다. 즉 교회나 어느 모임에서 당신은 목회자로서의 은사가 풍부합니다. 목회자로서, 지도자로서 충분히 공동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은사가 보입니다. 라면서 공동체가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공동체가 인정하면서 외적소명을 인식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해서, 하던 일이 안 돼서, 하나님이 이 길로 인도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사업이 망하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상의 조건에 있을 때,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저의 사위는 13살 때, 세계선교, 해외선교에 대한 부르심을 받고 모든지 그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졸업 후 25년간을 중동선교에 몸을 바쳤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방황할 때, “나를 사랑하면 네 양을 먹이라”고 분명하게 세 번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이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면 나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신학교를 나오기까지 나는 또 다른 30년을 기다려야 한다” 고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신학교 들어갈 때에는 아버님이 간절히 부탁해서 갔지만 목회자의 길도 들어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재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분명한 소명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라,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를 중매하라, 신랑이 얼마나 멋있는 분인가 신부들에게 신랑을 말씀으로 소개하라”고 사명을 주셨서 브라이드 성서연구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교재를 만들고 평신도들을 훈련시키면서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나를 든든히 붙잡아 준 것은 그 확실한 소명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흠 없고 정결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신성한 길을 가면서 소명 없이 “이것들이 안 되니까” 하나님의 길로 가야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무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상품으로 목회자를 부르십니다.
이것은 자격이 상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과 헌신이 상품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을 하다가 안 되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다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 전 인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 자신이 가장 생명이 넘치는 때, 하나님께 인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한 분은 64세에 미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인생은 목회자로 살지 못하고 은퇴하였습니다. 그 분은 목회자를 하나의 명예직으로, 자신의 경력의 한 부분으로서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목회를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화려한 경력의 한 부분으로 첨가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가장 상품을 드려야 합니다. 나머지 찌거기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병들고 가난해지니까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사업이 잘 될 때,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성결한 부르심에 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병들고 가난할 때, 하나님이 안 부르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병들고 힘들어지면 다들 목회자로 부르셨는가보다고 생각하면 그 것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적으로 본인에게, 외적으로 공동체를 통해 선명하게 사명을 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든지, 그 동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실 것입니다. 다른 것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오용해서는 안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고 싶은 내적동기가 없으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들에게 최선이기를 원하십니다. 최상이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것보다더 더 먼저이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