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16,1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를 전하시는 것, 마귀를 멸하시는 일 등은 모두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설교와 전도하시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셨으며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당하신 일이 병을 고치시고 마귀를 쫓는 일이었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설교하시게 되면 항상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일들은 그들을 고치고 먹이고 마귀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병자들이 몰려 왔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르치시며 훈련하는 일에도 시간을 많이 할당하셨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사역을 하시기도 하였지만 소수를 키우시고 훈련하시는 데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적은 무리들에게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심어주시고 그 일을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정예부대를 만드신 것입니다.
군중 목회도 중요하게 생각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훈련시키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이 정예부대들과 함께 하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 방법을 사용하셨다면 왜 우리가 이 방법을 등한시하여야 하겠습니까? 현대교회의 맹점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방법을 통하여 교회의 몸을 세우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부흥을 건물이나 재정에 두시지 않고 잘 훈련된 창조적 소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람을 훈련 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많은 인내와 투자가 필요합니다. 어리석은 방법처럼 보일지라도 이 방법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셨던 천상의 방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은 12명의 어깨 위에 복음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12명은 쉽게 패배할 것 같은 지극히 적은 숫자였습니다. 그러나 12명의 생명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훈련시킨 성도들을 통해 복음의 생명이 온 세계에 전해졌습니다. 이렇게 제자훈련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을 돕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복음의 확장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인격적 섬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제자훈련을 시키시는 방법은 ‘생활’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삶과 죽음 그 자체가 제자훈련의 교과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생활을 본받는 것 그 자체가 제자훈련의 첩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강력하게 초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함께 따르며 좇아가는 길이 제자훈련의 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물론 제자들에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주셔서 실습하게 하시고 세상으로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주 연약한 사람들이었지만 후에는 ‘능력부대’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일할 수 있도록 영적 무기를 준비시켜 주시고 파송하셨던 것입니다.
현대교회가 무능력한 이유는 양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재정적으로 풍성해졌지만 이렇게 소수 정예부대를 잘 훈련하여 파송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적 소수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흩어지기 쉬운 군중들을 모아서 목회를 하기 때문에 쉽게 흩어지고 쉽게 쓰러지고 열매 맺는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단지 떡을 먹고 흩어지는 다수의 군중에 불과할 뿐입니다. 떡을 먹고 기적을 체험하고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칠 수 있는 군중처럼 떡만 먹고 흩어지는 군중들로 인하여 교회는 싸울 힘도 없고 성장할 힘도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들을 이러한 제자의 삶으로 초청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