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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방법 - 살아 있는 말씀 -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 - 믿음을 받는 방법 - 테리로 목사님

양정식 2014. 5. 5. 15:54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방법 - 테리로 목사님 나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은 그 안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능력을 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살아 역사하는 운동력과 만물을 둘러 쌀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용어와 또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다시 살펴 보고지 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일을 행하는 가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종류의 열매를 맺는가? 우리는 자주 "말씀이 역사한다"라고 말한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그 말씀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히 무엇 혹은 누구인가? 헬라어 원어에서 이 말씀은 "logos"이다. 이 용어는 신약성경의 다른 책들에서보다 요한복음과 히브리서에서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가 이 용어를 언금하는 의미는 서로 다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할 때 이 용어를 사용 하셨다. 예를 들면 요한 복음 1:1,2을 보라.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또 14절을 보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외 진리가 충만 하더라" 위의 인용한 절들에서 요한이 "말씀"으로 언급한 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수와 말씀은 하나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용어는 이와는 다른 의미이다. 히브리서 4:12을 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여기서 사용된 "하나님의 말씀"이란 용어는 기록된 말씀 곧 성경을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 서로 모순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중 진짜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일까? 당신의 성경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일까? 그 해답은 극히 간단한 것이다. 그 둘 다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글로 기록한 책이다. 본질적으로 이 둘은 하나이자 똑같은 것이다. 당신이 오직 이 사실에 근거하여 당신의 성경에 다가갈 때만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 살아 역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경 말씀이 당신에 대해서 살아 역사하도록 의도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요한복음 6:63에서 "살리는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말씀하신 정확한 의미를 말해 준다. 또 계속해서 이 절의 나머지 부분을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께서는 그의 말이 영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한복음 4:24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여기서 "영"이라는 말을 무슨 의미로 사용하신 것일까? 요한복음 6:63은 그의 말이 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한복음 4:24은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 둘 사이의 연관을 아는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은 하나이자 똑같은 것이다. 이 둘의 똑같은 본질 - 똑같은 신적성품 - 을 가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는데 매우 큰 어려움을 발견한다. 이런 점에서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그 의미의 계시를 붙잡느냐 혹은 놓치느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이런 말을 썼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이 절에 포함된 여러가지 일들을 주목하라. 바울은 하나님께 쉬지않고 감사한다고 말하였다. 그이유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바울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미국 내의 대부분의 회중들이 목회자가 입고 있는 옷, 웅변술, 넥타이의 질감과 색깔, 머리를 빗어 넘긴 모양등에 의해 그를 판단 하는 것과 마친가지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람들도 바울을 이런 식으로 판단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외적인 문제들을 간과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또한 그의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 셈이었다. "그것은 내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도다. 그러므로 내 말을 믿는 너희 안에서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였도다." 여기서 "살아 역사하다"는 말은 그 말씀이 당신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에너지를 창조해 낸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말씀은 당신 안에서 실제로살아 역사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 진리들이 믿음을 이해하는데 토대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진리들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 신자들 안에서 행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당신 안에서도 창조하고 또 행할 것이다. 말씀은 살아 역사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기회를 우리는 놓쳐버릴 수가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다. 그들이 믿었기 때문에 그 말씀은 역사하였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믿지 않는다면 말씀은 당신에게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 "말씀이 역사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종류의 열매를 낳을까? 신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산하는 첫번째 열매는 믿음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믿음 "믿음"이란 무슨 의미인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 할 때에 우리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는 흔히 의사를 믿으라,부모를 믿으라, 혹은 선생님이나 정치가를 믿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말이 사용될 때 우리는 더 정확하게 이 말의 의미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인용한 로마서 10:17은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서 나온다고 우리에게 증거해 준다. 그렇다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나온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당신이 믿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는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그의 기록된 말씀 안에서 말씀하신 것을 그가 그대로 행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믿음에 대한 정의이다. 다윗은 그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을 대 믿음을 행사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종과 그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케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대상17:23) 여기서 다윗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증거해 주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다윗이 반응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믿음을 행사하였다. 당신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보라,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고 말했을 때, 마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기억하는가? 이 천사의 말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 명료한 것이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녀는 실제로 다윗과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다윗은 "말씀대로 행하사"라고 말하였고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참된 믿음인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참된 믿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어떤 거래 관계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믿음이 없이는 당신은 하나님과 교통 할수도 없고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도 없다. 히브리서 11:6은 이 진리를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니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를 믿어야 할지니라" 당신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당신은 믿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첫째 조건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얻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는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더 철저히 살펴 보기로 하자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한 성경의 고전과 같은 장이다. 이 장의 첫번째 절은 믿음의 정의에 관해서 우리에게 기르쳐 준다.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절은 믿음에 관한 두가지 진술을 담고 있다. 첫째,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이다. "실상"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hupostasis"인데 이 말은 "...에 관한 기초 혹은 터를 마련해 주는 것"이란 의미가 있다. 우리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기초를 이루는 실재 혹은 바라는 것들의 터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믿음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방법(2) - 테리로 목사님
    믿음
    
    "믿음"이란 무슨 의미인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 할 때에 우리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는 흔히 의사를 믿으라,부모를 믿으라,
    혹은 선생님이나 정치가를 믿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말이 사용될 때 우리는 더 정확하게 이 말의 의미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인용한 로마서 10:17은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서
    나온다고 우리에게 증거해 준다.
    그렇다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나온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당신이 믿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는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그의 기록된 말씀 안에서 말씀하신 것을
    그가 그대로 행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믿음에 대한 정의이다. 
    다윗은 그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을 대 믿음을 행사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종과 그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케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대상17:23)
    여기서 다윗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증거해 주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다윗이 반응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믿음을 행사하였다.
    당신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보라,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고 말했을 때, 
    마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기억하는가?
    이 천사의 말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 명료한 것이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녀는 실제로 다윗과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다윗은 "말씀대로 행하사"라고 말하였고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참된 믿음인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참된 믿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어떤 거래 관계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믿음이 없이는 당신은 하나님과 교통 할수도 없고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도 없다.
    히브리서 11:6은 이 진리를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니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를 
    믿어야 할지니라"
    
    당신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당신은 믿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첫째 조건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얻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는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더 철저히 살펴 보기로 하자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한 성경의 고전과 같은 장이다.
    이 장의 첫번째 절은 믿음의 정의에 관해서 우리에게 기르쳐 준다.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절은 믿음에 관한 두가지 진술을 담고 있다.
    첫째,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이다.
    "실상"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hupostasis"인데 
    이 말은 "...에 관한 기초 혹은 터를 마련해 주는 것"이란 의미가 있다.
    우리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기초를 이루는 실재 혹은 
    바라는 것들의 터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믿음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과 같은 것이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
    
    둘째,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러므로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믿음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믿음은 우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관계를 맺게 해주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의 세번째 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믿음으로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다르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우리가 볼 수 없는 것)으로부터 
    눈에 보이는 것(우리가 볼수 있는 것)을 만드셨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장막 뒤로 데려가서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믿음의 터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하라.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지한다는 것은
    당연히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 것이다.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네가 실험관으로 실험하여 옳다고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믿지말라"식의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고후5:7)
    이 절은 그러한 긴장 상태에 관하여 증거해 준다.
    사람이 믿음으로 행하기란 매우 어렵다.
    오히려 사람은 보이는 것에 의지하여 행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눈으로 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다.
    전자는 후자를 배제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증거를 볼 때까지 믿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이 말은 곧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겠다는 태도이다.
    그러나 성경은 순서를 바꾸어 말한다.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즉 우리가 믿어야만 보게 된다는 것이다.
    믿는 것이 먼저이고 보는 것은 나중이다.
    다윗은 이 원리를 매우 분명히 하였다.
    그는 시편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산자의 땅에 있음이여,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시27:13)
    이것을 다르게 해석하면 "내가 산 자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을 믿지 않았더라면 절망하여 가망 없는 자가 되었을 것이로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가 볼 수 있기 전에 먼저 다윗이 믿어야 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이것은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로 표명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
    이 진리는 우리를 절망으로부터 구해주는 것이다.
    
    믿어라 그러면 보리라
    
    이 원리는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에서 분명히 증거되었다.
    요한 복음 11:39,40을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여기서 핵심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에 있다.
    이 원리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믿는 것이 먼저이고 보는 것이 나중이다.
    당신은 이성으로도 이 원리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으로 이해하는 일과 영으로 이해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일이다.
    우리의 옛 성품은 눈으로 보기를 원한다.
    그것은 단지 믿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의 새 성품은 보기 위해서는 먼저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큰 갈등이 항상 우리 내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믿음은 그것이 보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믿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먼저 믿기 때문에 나중에 보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치료 받은 것을 보기 전에 
    당신이 질병에서 치료 받을 것을 믿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번영을 보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당신이 번영하게 될 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
    또한 승리가 확증되기 전에 당신이 마귀를 이기게 될 것임을 
    먼저 믿어야 하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바울은 그의 사역 중에 이 원리를 분명히 인식하였다.
    그는 고린도후서4:17,18에서 우리에게 매우 분명히 증거해 준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표면상으로 보아 바울의 이 말은 이치에 맞지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18절에서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라고 말하였다. 
    당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이 볼 수 없다면 어떻게 그것을 돌아볼 수 있는가?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보는 방법이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영원한 실제들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통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집에 있는 것 같이 그의 세계에서도 편하기를 원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그가 살고 일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살고 일할 수 있도록
    이 큰 믿음의 대로를 우리에게 주셨다.
    당신이 믿음을 가질 때 당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 안의 
    실재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며 게다가 그 실재들은 당신의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물체와 같이 당신에게 실재화될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19:26 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또 그는 마가복음 9:23 에서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두 절사이에 유사한 점을 주목하라.
    전자는 "다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후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두 절은 모두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왜 성경이 반복해서 믿음이란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지를 아는가?
    믿음은 당신과 나의 삶의 절대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방법(3) - 테리로 목사님
    소망과 믿음
    
    소망을 말하지 않고는 믿음을 말하기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 두단어 사이의 차이점을 간과해 버리긴 하지만 
    소망과 믿음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이 차이점을 엄밀히 분별할 수 있아야 한다.
    소망은 믿음의 모조품이다.
    소망한다고 당신의 삶속으로 기적을 불러 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돈을 가지기를 지금부터 영원토록 
    소망할지라도 결코 그 돈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소망할지라도 결코 그 돈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믿음은 지금 당장 그 돈을 가지게 할 수가 있다.
    믿음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들 중 하나는 소망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망은 믿음이 당신에게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소망 가운데 실재하지 않는 것을 붙잡아서 그것을 실재하는 영역 속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당신은 치료함을 위해 소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는  결코 치료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것이 당신의 것임을 믿어야 한다.
    그때서야 당신은 그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소망은 신약 시대의 신자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우리는 소망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믿음과 소망사이의 가장 첫째가는 차이점은 
    믿음이 마음에 있는 것이라면 소망은 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롬10:10)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에 이르다"는 말은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 혹은 동작을 나타낸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 속에 믿음을 가질때 그 믿음은 결코 가만히 있지 못 할 것이며
    그 자리에 정지되어 있지도 않을 것이며 항상 활동하며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믿는다면 당신은 그 믿는 것에 의해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머리 속에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역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당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머리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의해 표현된 원리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머리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효력을 가지는 믿음은 마음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오직 믿음이 당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올 때만이 믿음은 역사하게 될 것이다.
    믿음은 당신의 머리로 결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믿음을 언제 가졌는지를 안다.
    소망은 이와는 다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5:8)
    소망은 당신의 머리 혹은 당신의 정신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투구이다.
    신자로서 우리는 하루 24시간 동안 내내 소망의 투구를 쓰고 있으라는 
    권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소망은 정확히 무엇인가?
    소망이란 "최선의 것은 아직 남아 있다고 믿으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되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믿는,
    낙천적으로 만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소망은 부정적인 것에 안주하기를 거절한다.
    그것은 마귀의 간교한 공격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해준다.
    또한 소망은 단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
    소망은 성경이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 근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우리의 선을 이루게 하신다.
    그리고 소망은 이 사실을 믿는다.
    이것은 충성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비관론자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만약 당신이 항상 사물의 나쁜면괴 부정적인 면을 보고 있다면 
    당신은 성경이 말하는 소망을 실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마귀로 하여금 당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도록 
    당신이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소망도 하나님의 말씀에 그 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는 아내를 소망 하였다.
    
    내가 경험한 일을 통하여 이것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여러해 전에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나는 내 인생에서 크게 슬픈 일을 겪었다.
    그것은 나의 아내가 툴사에서 교통사고로 즉사 한 것이었다. 
    그 때의 슬픔과 고통 마음의 상처와 분노를 말로 묘사하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강하게 내 속에서 역사하셨고 
    결국 찬양과 경배의 사역으로 나를 인도 하셨다.
    내가 찬양 안에서 이 새로운 일에 뛰어들었을 때 나는 남은 내 인생동안 
    내 아내 없이 혼자 지내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 하였다.
    내게는 졸지에 엄마를 잃은 세명의 자식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로마서 8:28에 근거하여 나는 나의 인생에서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믿고 긍정적으로 환경을 바라볼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재혼하기 전에 얼마동안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내가 다른 배우지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기 전에 나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2년이란 기간동안 나는 마음 속에서 많은 전쟁을 경험하였다.
    마귀는 내가 결코 아내를 찾지못할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이유는 세명의 남은 자식들을 기꺼이 양육하겠다고 나설 여자가 
    아무도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마귀가 내게 속삭였다.
    "너는 자주 여행을 다니고 있어. 그러면 너는 자주 집을 비우게 될 것이고 
    네 아내는 거의 혼자서 가정을 꾸려 가야 해. 
    어떤 여자가 세명이나 되는 남의 자식을 키우면서 그런 네 아내가 되려고 하겠어?
    그녀는 가정부가 아니야. 아마 금방 네 아내 노릇에 넌더리를 내고 말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행동 하실 것이라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면서 계속 확신을 가지고 나는 아내를 소망하였다.
    나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선을 이루게 될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은 믿음과는 다른 것이다.
    당신이 믿음을 가질 때 당신은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나는 2년이란 기다림의 기간이 지나면 미래의 나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게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소망하고 있었다.
    2년의 기간이 끝났을 때 나는 셔리를 만났다.
    그 때 그녀는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내 눈에 보였다.
    그 때는 거의 정확히 2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것은 소망의 실행이었다.
     
    소망은 미래에 있다.
    믿음과 소망 사이의 두번째 차이점은 
    믿음이 현재에 있는 것이라면 소망은 미래에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앞에서 우리가 믿음을 진짜실재하는 것,실제로 존재하는 것,
    물질이자 터로서 묘사하였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소망은 이와 다르다.
    소망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믿음을 가질 때 당신은 원하는 것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소망할 때 당신은 미래에 그것을 가지게 될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소망을 믿음으로 착각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나의 집회로 나를 찾아와서 자기는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이 일 혹은 저 일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말하곤 하였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믿음을 가졌다면 이미 그들의 기도는 이루어졌을 것이며
    또한 내게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머리 속에서 두가지 원리가 뒤섞여서 그들을 혼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소망이 머리 속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당신은 당신의 머리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의 머리는 그 자신의 생각들을 인식 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선한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소망이다.
    믿음은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
    한편 당신이 진실로 언제 믿음을 가질 것인 가를 아는 것은 때때로 
    어려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감각적으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내 머리로는 내 속에 도대체 어떤 믿음이 있는지,실체로 믿음이 있는지 혹은
    없는 지조차도 알아 차리지 못하였다.
    여러해 전에 캐나다 알베르타주 메디신 하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집회를 열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작은 어린 아기를 
    병원에서 데리고 왔던 일이 있었다.
    그 아기는 코와 다른 신체 부위에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그 아기를 보았을 때 나는 아무 것도 내 속에서 느껴지지 않앗다.
    나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내 손을 그 아기에게 얹고 
    극히 간단 명료하게 기도하였을 뿐이다.
    기도를 끝마쳤을 때에도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 하면서 그 아기의 곁을 떠났다.
    여러 달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 아기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그 자리에서 즉시 치료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때의 나의 놀라움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때 나는 마음에 관해서는 전혀 아무 것도 느끼는것이 없었다.
    그러나 믿음은 내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관해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말 해준다.
    
    믿음이 오늘이라면 소망은 내일임을 기억하라 
    만일 당신이 내일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현재 믿는다면 
    당신은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당장 고침을 받았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차이가 있다.
    아무리 많이 머리의 프로그램을 다시 짜더라도 그것이 
    머리 속에 믿음을 창조할 수 없다.
    믿음은 당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믿음은 당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방법(4) - 테리로 목사님
    믿음을 받는 방법
    
    믿음을 주제로 하는 의문 중에서도 우리는 이제 가장 중요한 의문에 이르게 된다.
    어떻게 내가 믿음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진실로 믿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
    믿음은 바울과 베드로, 다윗과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성경인물들에게만 있는 것이지
    과연 내게도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단지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안에서 그가 원할 때 내 마음 속으로 
    믿음을 떨어뜨려 주실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내가 지금 믿음을 받기 위하여 행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
    그러므로 당신은 믿음을 얻어야 한다.
    또 믿음을 받아야 한다.당신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이다.
    믿음을 얻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만일 당신이 믿음을 얻는 일에 책임을 지고 있다면 틀림없이 믿음이
    당신에게로 올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로마서 10:17은 그 해답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당신은 아마 전에도 이 절을 한 100번쯤 읽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절을 읽을 때 여기서 나는 "...에서 나오다"라는 말을
    당신이 주목하게 되기를 바란다.믿음은 오는 것이다.
    당신은 믿음이 어디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가?
    믿음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당신에게로 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믿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믿음은 어떻게 오는가?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
    
    그 다음 의문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잠언 4:20-22에서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특히 22절에서 이 잠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고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치료함도 있다.
    이절의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는 말을 어떤 번역에는 
    "그 온 육체의 치료약이 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참고하길 바란다.
    한편 20절과 21절은 그 생명을 발견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20절에서 이 저자는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과정에서 취하는 첫번째 단계를 증거해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는 
    그 말씀에 온통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는것까지 포함된다.
    20절이 담고있는 
    두번째 권면은 "나의 이르는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꺼이 가르침을 받겠다는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또한 선입관이나 편견같은 것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의 능력에 복종시켜야 한다.
    세번째 권면은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저자들이 그들의 책이나 논문 등에서 써 놓은 것에 
    눈을 고정시키지 말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야 할 것이다.
    또 네번재 권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 속에 지키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한 대로 
    우리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율법책을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
    내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묵상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감동이 내 마음에 찾아 올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 오는 방법이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방법이 아니다.
    사실 극히 단순한 방법이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들째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말씀이 나를 가르치도록 
    귀를 기울인다.
    세째 그말씀이 나에 대해 무슨 거스리는 말을 할지라도 
    말씀에 내눈을 고정 시킨다.
    마지막으로 나는 주야로 항상 그말씀을 묵상한다.
    이 권면은 고린도 후서 4:18 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였던 내용과
    유사하지 않은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사실 이 이 절은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니
    너희는 보이는 것을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치료함과 번영과 하나님의 축복의 영원한 실재들을 
    계속 바라본다면 조만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재들이 우리의 몸과 
    우리의 개인적인 환경에 그들 자신을 나타내게 될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다시 로마서 10:17을 보기로 하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서 사용된 "말씀"은 헬라어 "rhema"를 번역한 것이다.
    
    로고스와 레마
    
    신약성경의 헬라어 원어에는 일반적으로 "말씀"으로 번역되는 
    두가지 다른 단어들이 있다.
    하나는 "로고스"이고 다른 하나는 "레마"이다.
    이 두 단어는 의미상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로고스는스스로 존재하는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윗은 시편 119:89 에서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이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의 영원 속에서도 있었고 미래의 영원 속에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이며 불변하는 하나님의 밀씀인 것이다.
    반면에 레마는 "말하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특히 "말해진 말씀"이란
    의미가 있다.
    바울이"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을 때
    말씀이 누군가에게 들려지기 위해서는 말해져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자 한다면 그것은 성령에 의해 말해져야 한다.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를 닮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광대하고 매우 복잡하다.
    나로서도 그것을 그것을 전부 이해하기가 어렵다.
    
    리마는 성령께서 로고스의 작은 부분을 취하여 나의 인간적인 경험가운데서
    내 마음 속에 말씀하실 때 적용된다.
    즉 리마는 나의 특별한 환경에 적용되는 로고스의 작은 부분이다.
    그것은 성령의 감동 아래에서 내게 말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당신이 성경의 어떤부분을 읽을 때(전에도 여러번 그부분을 읽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부분이 당신에게 특별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 역사하는 일이 일어나는 때가 있다.
    그 말씀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 당신의 반응은 듣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레마는 하나님과 성령으로부터 우리 각 사람에게 직접적이며 
    개인적으로 오는 말씀인 것이다.
    레마의 능력에 관해 증거해 주는 한가지 좋은 예는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예수께서 사단에게 한 말씀에서 나타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여기서 "나오다"로 변역된 말은 헬라어에서 현재 진행형 시제로 사용되어져 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또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셈이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힘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레마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의 매일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신선하고 항상 새롭다.
    신자가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러한 레마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역사하는 
    믿음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이사야서 55:8-11에서 이사야 선자자는 우리로 하여금 로고스와 레마를 비교하여
    생각하도록 해 준다.
    그 내용을 보기로 하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여기서 이 신자는 하나님의 생각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생각들은 우리의 생각들보다 높은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하늘에 영원히 세워져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로고스이다.
    
    레마는 비와같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평면 곧 하늘 아래인 땅 위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길과 생각은 하나님의 길과 생각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
    우리의 수준을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생각들을 보내신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땅을 적시는 비와 눈과 같이 그것들을 보내주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토지를 적시어서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자에게 양식을 주는 것과 같다"고
    묘사 하였다.
    그는 또 다음 절에서 계속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러하다고 말하였다.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그 말씀이 바로 레마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레마는 말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레마는 우리의 특별한 상황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 중 한부분이며
    가장 적절한 순간에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일에 형통하리라"고 말하였다.
    
    그 말씀은 스스로를 충족시킬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단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인 레마를 통하여 우리에게 온 후에는 우리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 하는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우리의 입으로 
    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이다.
    이때가 바로 우리가 신약 성경이 말하는 자백의 행위로 들어가야 할 때이다.
    앞에서 나는 찬미의 제사가 실제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언급하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만일 그 레마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서 폭발하였다면 
    우리는 그것을 말로 나타내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입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켜야 하는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찬양이 무엇인지를 정의해 준다.
    찬양은 입으로 시인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우리가 나음을 입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물질 적으로 복을 받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며 마귀를 이기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찬양은 우리의 믿음을 마치 속박에서 풀어 놓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말씀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레마의 말씀이 믿음을 통하여 당신의 마음 속에서 폭발할 때 당신의 입은 
    그것에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해야한다.
    그리고 당신의 입으로 증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에 있다.
    이것이 찬양이 믿음을 역사하게 하는 열쇠가 되는 이유를 말해준다.
    믿음을 더하게 하는 찬양 중에서 - 테리로 목사님
    
    예수이름으로
    	 
    
    출처 : 그리스도의 몸인 형제사랑의집
    글쓴이 : 형제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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